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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경주는 시간의 흐름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내는 계절을 지나고 있다. 한 해가 마무리되고 다음 시간이 열리는 이 시기, 도시는 멈춘 듯 보이지만 오래된 터들은 오히려 신라의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황룡사의 9층탑이 국가의 질서를 세우던 장면, 포석정의 물길이 왕조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하던 자리, 정월의 의식이 새해를 다시 열던 풍경은 서로 다른 시대의 사건이지만 모두 시간의 순환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경주의 유적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신라가 다져온 질서와 기억을 품은 채, 멈추지 않는 시간을 오늘까지 조용히 이어 보여주고 있다.
▶나라의 시간을 밝히다. 황룡사
자장*은 먼 길 끝에서 깨달음을 구하던 수행자였다. 당나라 태화지 언덕을 지날 때, 바람처럼 나타난 한 신인(神人)이 자장에게 물었다. “너희 나라는 무엇이 어렵느냐.” 자장은 북과 남, 동과 서에서 몰려드는 침입과 흔들리는 백성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신인(神人)은 조용히 말하며 길 하나를 가리켰다. “귀국해 황룡사 안에 아홉 층의 탑을 세우라. 그 탑이 서면 이웃 나라들이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왕실의 숨은 다시 이어질 것이다.” 자장은 이 말을 듣고 귀국했고, 선덕왕과 탑 건립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백제 장인 아비지가 불려와 기둥과 나무를 다루었고, 신라의 장인들은 그 아래 손길을 얹었다. 그러나 중심 기둥, 찰주를 세우는 날 아비지는 밤새 불길한 꿈을 꾸고 마음이 흔들렸다. 탑은 그 기류를 읽은 듯 잠시 멈춘 듯했지만, 어둠이 내린 금전문에서 노승(스님)과 장사(壯士)가 나타나 기둥을 곧게 세우고 사라진 순간 탑은 다시 숨을 얻었다.
마침내 아홉 층의 탑이 하늘을 향해 서자, 혼탁하던 시대의 기운이 잔잔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외적의 발걸음이 멀어졌고, 신라는 다시 한 번 평화의 시간을 되찾았다. 겨울 햇빛이 금빛 기와에 얹히던 날처럼, 황룡사의 탑은 그렇게 나라의 시간을 밝혀두었다..
*삼국 시대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때 대국통을 지낸 승려로, 불교 교단의 규율을 제정하고 황룡사 구층 목탑의 건립을 주도함.
<출처>
<황룡사 구층목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자장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전>
<황룡사역사문화관 - 경주문화관광전>
▶포석정, 신라의 오랜 흐름이 잠시 멈추다
▶포석정, 신라의 오랜 흐름이 잠시 멈추다
남산 서쪽 계곡에 자리한 포석정은 전복껍데기처럼 굴곡진 타원형의 수로가 흐르는 신라 왕실의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의 장소였다. 물길에 술잔을 띄우면 약 10분동안 끊기지 않고 흐르며, 그 시간 안에 오언시나 칠언시 한 수를 짓도록 설계된 공간이었다. 돌의 완만한 기울기와 곡선은 흐름을 멈추지 않게 했고, 시와 음악, 왕의 풍류가 깃든 청유의 자리였다. 그러나 이 풍류의 공간은 신라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공간이 되었다. <삼국사기>는 경애왕 4년, 927년의 겨울을 이렇게 기록한다. 왕이 포석정에 나와 잔치를 즐기던 순간,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기습하여 왕은 현장에서 살해되고 왕비와 신하들 또한 모두 비극 속에 쓰러졌다. 경애왕의 동생인 ‘효렴’에 관련된 내용에도 같은 날의 참혹함이 적혀있다. 효렴 역시 재상 등과 함께 포석정에서 붙잡혀 후백제로 끌려갔다. 천년 동안 시와 술이 흐르던 수로는 그렇게 왕조의 마지막까지 흘려 보냈다. 지금은 느티나무 뿌리에 밀린 수입구와 낮아진 배수구가 옛 모습과 다르지만 보존 작업을 통해 원형에 가까운 자태를 지키고 있다.
*유상곡수연 : 굽진 물길에 술잔을 띄운 후 시를 지어 올리는 연회
<출처>
<경주포석정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효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포석정 - 경주문화관광>
▶새로운 시간을 여는 신라의 아침
나라의 새벽을 여는 의식
정월 초하룻날, 신라는 왕을 중심으로 새해를 여는 의례를 치렀다. <수서>와 <당서>는 신라가 매년 원단에 서로 새해 인사를 나누고, 왕이 연회를 베풀어 관원과 손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기록한다. 이 날 신라 사람들은 일월신에게 절을 올리며 새로운 한 해의 평안을 기원했다. 왕은 나라의 질서를 다시 열고 신하들은 조하의 예를 갖추며 한 해의 첫걸음을 맞았다. 신라의 정월은 단순한 명절이 아니라, 왕권과 국가의 기운이 새로이 깨어나는 시간이었다.
새해를 깨우는 신라의 등불
정월 대보름, 신라 왕은 황룡사로 행차해 사찰을 밝히는 연등회를 친히 살폈다. 황룡사는 진흥왕 때 창건된 나라의 중심 사찰로, 이 날이면 경내 곳곳에 등불이 켜지고 승려와 백성들이 함께 부처의 덕을 기리는 의식을 올렸다. 등불을 밝히는 연등은 마음을 맑히고 복을 비는 행위로 여겨졌으며, 왕은 ‘관등’이라 불린 등불 구경을 통해 나라의 평안을 기원했다. 의식이 끝나면 왕은 황룡사 뜰에서 백관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정월의 밝은 기운을 함께 나누었다. 신라는 이렇게 정월의 첫 보름날, 불빛 아래에서 한 해의 복과 안녕을 함께 여는 의례를 이어왔다.
<출처>
<정조하례-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관등-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출스팟 - 경주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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