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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살에 지친 여름, 밤이 더욱 반가운 계절이다. 무더운 더위만큼, 오싹한 이야기가 그리워지는 시간. 천년의 세월을 품은 경주에는 여름밤의 별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 쉬고 있다. 화려했던 궁궐의 마지막 연회, 거센 파도 속 나라를 지키려던 왕의 맹세, 그리고 이름조차 남지 않은 성벽 너머의 전설까지.
시원한 여름밤. 그 오래전 이야기로 함께 들어가 보자.
▶ 환생해서 다시 지은, 천년 경주의 석굴암
통일신라 시기, 모량리에는 가난한 어머니 ‘경조(慶祖)’와 아들 ‘대성(大城)’이 살고 있었다. 아이는 머리가 크고 이마가 넓어 성(城)처럼 보였고, 그래서 이름을 ‘대성’이라 지었다. 어느 날, 근처 절에서 불교 법회가 열리며 시주를 권했는데, “하나를 베풀면 만 배의 복을 받는다”는 말을 들은 대성은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밭을 시주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성은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한편, 재상 김문량의 집에서는 “모량리의 대성이 이 집으로 다시 태어나리라”는 하늘의 목소리가 들렸고, 곧 그의 아내가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태어난 지 7일 만에 손을 펴며 손안에서 ‘대성(大城)’이라는 글자가 적힌 금간자(금빛 쪽지)를 드러냈다. 사람들은 이 아이가 전생의 대성이라 믿었고, 김문량은 아이에게 ‘김대성’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장성한 김대성은 한때 사냥을 즐겼는데, 어느 날 토함산에서 곰을 사냥한 뒤 잠든 밤, 꿈에 사냥한 곰이 귀신이 되어 나타났다. 곰 귀신은 자신을 죽인 대성을 잡아먹겠다고 협박했고, 겁에 질린 대성이 절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하자 사라졌다. 그날 이후 김대성은 사냥을 끊고, 곰을 위해 사냥하던 자리에 장수사(長壽寺)를 세웠다. 그리고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현 석굴암)를 창건했다.
이 설화는 전생의 시주가 현생의 복으로 돌아온다는 불교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신라인들이 믿었던 전생과 윤회, 시주의 힘, 그리고 효도의 가치를 함께 전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나라를 지킨 문무대왕과 하늘이 내린 피리
경주 동해, 거친 파도가 이는 한 가운데 작은 바위섬. 신라의 문무왕이 잠든 ‘문무대왕릉’이 있다.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은 죽기 전 “죽은 뒤에 호국대룡(*護國大龍)이 되어 불법(불교의 가르침)을 받들고 나라를 수호하고자 한다.”는 유언을 남긴다. 이후 유언에 따라 유골이 동해 작은 바위섬에 안치되었고, 이 무덤은 문무대왕릉이 되었다.
문무대왕릉에 내려오는 가장 유명한 전설은 ‘만파식적(萬波息笛)’에 관련된 내용이다. 신문왕은 아버지인 문무대왕을 기리기 위해 감은사를 세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해에서 떠다니는 바위와 용, 그리고 신비한 대나무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신문왕은 점술가에게 물었고, 점술가는 용이 된 문무대왕과 하늘의 신이 된 김유신이 보내는 보물이라고 전했다. 신문왕은 바다로 가서 대나무를 베었고, 즉시 바다의 바위와 용이 사라졌다. 그 대나무로 왕은 ‘만 가지 파도를 잠재우는 피리’, 즉 모든 근심과 혼란을 가라앉히는 신비한 피리를 만들었다. 설화에서는 이 피리를 불면 적이 물러가며 병이 낫고, 가뭄엔 비가 오고, 장마는 그치고 바람과 파도도 잔잔해졌다고 한다. 심지어 후에 ‘실례랑’이라는 인물이 부활하는 일이 일어나면서 강조의 의미로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고도 불리게 된다.
*호국대룡-나라를 지키는 큰 용
<출처>
<국사편찬위원회>-삼국유사
▶ 성을 쌓기 위해 묻힌 사람들
성벽 등 건축 공사 과정에서 실패하지 않기 위해 기둥 아래 사람을 묻는 ‘인주설화(人柱說話)’. 지역과 시간을 넘어 동아시아 곳곳에서 전해져오는 이 설화는 사람을 바쳐야 튼튼한 건축물이 완성된다는 오싹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천년 궁궐의 성벽 아래에 실제로 인골(사람의 뼈)이 묻혀있다면? 설화로만 여겨졌던 인주설화가 신라 궁터인 경주 월성 성곽 안에서 존재한다.
2017년, 국내 최초로 성벽 유적에서 인골이 나왔다. 문화재청에서 월성 서쪽에 있는 서성벽을 조사했고, 성벽을 본격적으로 쌓기 직전인 기초 층에서 인골 두 구가 출토되었다.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인골이 확인된 사례는 월성이 처음이다. 본래 인주설화는 고대 중국에서만 성행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우리나라에서는 설화로만 전해져 왔었는데, 2017년에 고고학적 사실로 확인되었다. 2021년에도 여성의 인골이 추가로 발견되면서, 신라에서 인주(人柱), 즉 인신 공양이 의례적으로 행해졌을 가능성이 다시 한번 제기되었다. 2021년도에 발견된 시신은 2017년도에 최초로 발견된 인골에서 불과 50cm 떨어진 곳에서 확인되었는데, 시신에는 저항의 흔적이 없어 사망한 뒤 묻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월성에서 발견된 인골은 설화를 뒷받침하는 증거일 뿐 아니라, 신라 왕궁의 축성 시기와 공사 방식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밝혀낸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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